브랜딩이 필요해
오늘의집 브랜딩 이야기 #1
2017년 11월 30일 미나

브랜딩이 우선순위가 아니라니.

오늘의집의 디자이너로 처음 일하게 되면서 누가 나에게 뭐가 중요하고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브랜딩을 해야 되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원래 하던 일이 커뮤니케이션과 브랜딩에 가까웠고, 어디서 브랜딩이 제일 중요하다고 주워 들었고, 나는 디자이너이니깐.

초기에 팀원들과 같이 일하며 업무파악을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은 우리는 앱, 웹, SNS에서 니즈를 가진 유저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해왔고 필요한 기능을 빠르게 만들어 작동시키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내가 브랜딩 관련된 아티클이나 강의 등에서 접한 사례의 기업들은 우리 회사와는 상황이 달랐고 우리 회사에 지금 필요한 일은 브랜딩이 아니었다. 나는 UI/UX 디자이너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처음에 이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1년 동안은 브랜딩에 대한 고민을 못했다. 그래도 뭔가는 해야 할 것만 같았지만 동료들에게 브랜딩이나 회사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BI 작업은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고 그 외에도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어쩔 때는 배너의 키비쥬얼을 만드는데 시간을 쓴다던가, 크리에이티브 콘셉트를 이야기하려들면 지금 우리가 가진 리소스 내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을 하자는 대답이 돌아와 움츠려 들기도 했다. 내가 유명한 짤에 있는 개발자가 본 디자이너의 모습(아무것도 모르는 아기가 엉망진창을 만드는)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이미지 속 개발자들이 본 디자이너의 모습이 나의 모습인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이 곳은 내가 이직하기 전에 있었던 조직(크리에이티브를 중시하는 광고업계)과는 많이 다른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래픽 디자인을 주로 하던 내가 UI/UX 디자인에 익숙해지며 디자인 작업에서의 관점도 많이 바뀌면서 이런 생각은 점차 하지 않게 되었다.

갑자기 찾아온 브랜딩의 필요성

그러다 갑자기 오늘의집이 오프라인에서 대중과 만나게 될 일이 생겼다. 2016년 가을에 tvN에서 10주년 기념 축제를 여는데 그곳에 쉬는 공간을 우리가 만들게 되었다. 편한 의자와 소품들로 예쁘게 휴식공간을 꾸미는 단순한 프로젝트였다. tvN의 문화콘텐츠들이 주인공인 행사였다. 우리가 뭔가 다른 것을 홍보함으로써 큰 효과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예산도 아주 적게 잡았다. 그래도 그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오늘의집 해쉬태그 이벤트를 하기로 했다. 그 이벤트의 포스터 작업을 위해 나와 동료 디자이너 한 분과 이 행사 담당자 세 명이 미팅을 했다.

행사에 대한 내용을 전달받고 나서 포스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의집 서비스 내에서 혹은 SNS 채널에서 보일 이벤트 페이지를 만들 때 시간이 없어 고민하지 않고 지나쳐 오던 것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우리가 왜 이 이벤트를 해야 하며 대중에게 보일 우리의 모습이 무엇인지 논의해보았다. 그때 동료 디자이너가 툭 던진 말이 ‘집이 최고다’였다. 여기서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오늘의집을 이용하는 2~30대의 유저는 집과 일상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전셋집이나 원룸이라도 소중한 공간인 집을 예쁘게 꾸민다. 파자마를 입고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tvN 드라마를 보는 유저의 모습이 떠올랐다. 단순히 이 행사의 콘셉트를 잡은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딱 짚어낼 수 있는 통찰력 있는 한 마디라고 생각한다.

예산도 적었고 이 행사를 준비하는 일의 우선순위가 다른 UI 디자인 작업들에 비해 낮았기 때문에 빠르고 싸게 진행을 해야 했다. ‘집에서 보는 tvN은 꿀잼’이라는 제목으로 tvN의 콘텐츠 맥락을 첨가한 드립들을 엄선해서 낙서 같은 그림과 손글씨 폰트로 그래픽 이미지를 만들었다. 여기서 집순이와 집돌이, 집냥이가 탄생했다. 집순이는 우리 회사의 유일한 유부녀이자 신혼집을 꾸미고 있는 30대 초반의 나를 모델로, 집돌이는 원룸에서 고양이랑 살며 취향 까다로운 20대 후반의 남자 동료를 모델로 그렸다. 각각 여자와 남자 페르소나라고 생각하고 약 10분 만에 그렸는데 이것이 우리의 메인 캐릭터의 조상이 될지 그때는 몰랐다. 맷 그레이닝도 FOX 관계자와의 미팅을 위해 대기하던 짧은 시간에 심슨가족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후훗

전시할 아이템들을 주문 제작할 비용을 아껴서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앱의 기능적 속성을 빠뜨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곳에 전시한 가구와 소품들에 실제 만질 수 있는 +태그를 달았다. 디지털 베이스의 디자이너인 나의 직업 병적인 집착으로는 이 +태그와 내 오늘의집 계정이 연동되어 앱에서 그 제품의 정보를 알려주고 스크랩할 수 있게 해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냥 동그란 폼보드! 한쪽면에는 +기호, 반대면에는 제품의 정보를 프린트한 종이를 붙였다.

실제 행사장에서 구경하던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말풍선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여러 관람객들이 전시해놓은 집순이 티셔츠를 사고 싶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원래 분위기가 좋은 축제의 한가운데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우리의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만들어낸 행사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우리의 구역 바로 옆에는 LINE의 구역이 있었고 그곳의 빵빵한 전시물에 잠시 주눅 들긴 했지만, 그래도 즐겁고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쳤다.

얻은 것

이 행사로 얻은 눈에 보이는 성과라 할 수 있는 것은 해쉬태그 이벤트로 올라간 인스타그램 포스팅들 말고는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 서비스 브랜딩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아주 큰 기여를 했다. 원래 오늘의집 대표 슬로건은 ‘가장 쉬운 인테리어 레시피’ 였는데 이 같은 기능적인 수사 말고도 우리 서비스의 가치를 담는 그릇을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체계적으로 생각해서 한 작업은 아니고 갑자기 필요해서 즉흥적으로 하게 되었지만 비전, 페르소나, 핵심가치 등의 브랜딩의 요소들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팀원들과 좋은 추억, 미래에 우리 브랜드가 어떻게 성장할지에 대한 기대감을 얻을 수 있었다. LINE에서 전시한 문 인형처럼 언젠가는 소파에 널브러진 집순이로 실물 사이즈 인형을 만들어야지!

집순이도 언젠가는 이렇게 실물사이즈 인형으로 만들거다!

내가 더 노련하고 통찰력 있는 디자이너였다면 즉흥적이고 서투르게 일을 하지 않고 계획적이고 우아하며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냥 이러면서 크는 거다. 이렇게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면서 새롭게 배운 것들, 만들어 나가는 것들이 많다. 서투른 과정이나마 글로 정리를 해놓으니 나도 좀 더 객관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이 일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다음의 브랜딩 과정이나 UI/UX 디자인에 대한 내용도 가끔씩 글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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